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둘러싼 논란이 점차 정치적 압박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국회 청문회 불출석을 이유로 한 입국 금지 검토, 강경한 언사와 책임 추궁은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사태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대응인지는 의문이다.
자진 신고의 의미와 기업의 책임
우선 분명히 짚어야 할 점이 있다. 이번 사태는 외부 고발이나 언론 폭로로 처음 드러난 사건이 아니다. 쿠팡이 내부 시스템 이상을 인지한 뒤 관계 당국에 자진 신고하면서 알려진 사건이다. 이는 최소한 기업 차원에서 개인정보 보호 책임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과 문제 은폐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자진신고가 모든 책임을 면제하지는 않는다. 이후 쿠팡의 여론 대응과 커뮤니케이션은 안일했고, 피해 규모와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설명도 충분하지 못했다. 이 점에서 비판은 불가피하다.
내부자 위험: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상수
이번처럼 내부 직원의 일탈은 특정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의 디지털 환경에서 내부자 리스크는 해킹만큼이나 상시적으로 존재하는 위험 요소, 즉 미래의 상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권한을 가진 인간이 시스템에 접근하는 한, 완전한 예방은 불가능하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잘못했는가’보다, 어디까지를 통제하고 어디서부터를 감내할 것인가라는 구조적 판단이다.
과도한 응징의 예상 결과
- 직원 개인의 통신·행동·접근 기록에 대한 과도한 감시
- 인사·보안 부서의 상시적 사찰 구조
- 내부 고발이나 문제 제기를 위축시키는 조직 문화
이는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보안을 빌미로 기업 내부에서 새로운 인권침해 문제를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인간 배제의 함정: AI 중심 보안의 역설
더 나아가,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이면서도 합리적인 대응은 따로 있다. 보안 관련 핵심 영역에서 인간 직원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내부자의 일탈이 가장 큰 리스크라면, 기업 입장에서는 인간을 배제하고 AI·자동화 시스템에 최대한 의존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보안, 로그 분석, 접근 통제 영역에서 인간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결코 더 안전한 사회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AI 중심의 보안 체계는 투명성이 떨어지고, 오류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며, 시스템 장애 시 피해가 더 광범위해질 수 있다. 인간의 판단이 배제된 보안 환경은 또 다른 불안의 씨앗이 된다.
결론: 전략적 선택으로서의 처벌 자제
지금 정부 여당의 대응은 책임을 묻는 단계를 넘어, 강한 메시지를 남기는 데 집중돼 있다. 그러나 디지털 사회에서의 위기는 정치적 결단으로 단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쿠팡의 대응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고, 그에 대한 책임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과도한 응징의 사례로 남긴다면, 그 부작용은 쿠팡을 넘어 모든 기업과 모든 노동자, 그리고 모든 이용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해킹 등의 사이버 사고와 내부자 리스크가 일상이 되는 시대에, 정치의 역할은 분노의 대리인이 아니라 미래의 불안을 줄이는 설계자다.
처벌 자제는 봐주기가 아니다. 그것은 더 위험한 미래를 피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